미국에서 인생 첫 직장
졸업을 1년 앞두고, 여름 방학 인턴을 열심히 찾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여름 방학이 길어서 보통 미국에서는 이 기간에 인턴이나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며 사회 경험을 쌓거나 돈을 벌거나 한다. 난 컴퓨터 학도로서 프로그래밍 일을 열심히 찾으러 다니며 여기저기 지원을 했다. 영어가 아무래도 부족한 외국인 학생인 나는, 돈 받고 일하기에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렇다고 프로그래밍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그런 평범한 외국인 학생을 돈주고 일을 시켜 줄 회사가 있을까 싶었다. 역시 인턴 지원하는 데마다 족족 떨어지고, 학교 내에 전산실 같은 곳마저 까임을 당해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학과 게시판에 붙은 게시글을 하나 보게 되었다. 학교 근처의 작은 공장이 딸린 물류 생산 회사였는데, 웹 페이지를 만들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그 회사 사장님과 면접을 봤는데, 내가 외국인이고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인턴으로 일을 하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착하고, 열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처음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회사는 물류 회사이기 때문에 IT관련 일은 외주로 주고 있었다. 내 일은 그 외주 업체와 주마다 회의때 회사측 입장에서 의견을 주는 것이었고, 장기적으로는 자체적인 웹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일을 하기엔 너무 초짜였고, 시스템은 커녕 매 주 회의에서 의견내는 것 조차 힘겨웠다. 사장님도 내가 그 만큼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지 html과 css로 웹페이지를 구성하는 게 3개월간의 내 일이 되었다. 맨날 html/css가지고 씨름하며 3개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일보다 더 힘든 건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공장과 사무직 사람들이 섞여 있는 30명 가까이 되는 미국인과 어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 엄청 어려웠다. 나 같은 친화력 낮은 개발자는 특히 더 그랬다. 아무튼 어색한 점심 시간과 힘든 회의 시간, 외로운 개발 시간으로 3개월이 지나갔다. 마지막에 그렇게 개발된 작업물에 대해서 인정해 주고, 잘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스는 정말 지금 생각으론 개판이였던 것 같다. 한 몇 년 지나고 궁금해서 그 회사 웹 사이트를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내가 만든 것으로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 소스를 쓰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래도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배웅을 받았다. 마지막 날 나를 위해 케익을 만들어 송별회 파티를 해 주었고, 편지도 써주고, 근처에 앉았던 여사님은 약간 눈물도 흘려주었다. 아무래도 작은 구석 도시여서 그런지 뭔가 정스러운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 출근 전에는 부담감에 잠을 잘 못잤고, 퇴근 때는 신이 나서 달려오곤 했다. 그때 작은 소망이 회사 사람들과 편하게만 지내도 좋겠다는 것이였는데, 지금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주변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많이 잃어 버린 것 같다. 커피 한 잔과 일상적인 얘기들, 동료들과의 농담, 이런 것이 의외로 중요한 환경 요소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