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그리다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유호현,김혜진,박정리,송창걸,이종호 저)란 책을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구글과 애플에 관한 책을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실리콘밸리에 대한 찬양의 글이 대부분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하지만 추천사인가 리뷰에서인가 장점과 단점을 꽤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글을 보고 한번 봐보기로 했다.
5명의 저자와 3명의 특별 기고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명에 의한 편향된 시선의 글은 아니었고, 실리콘밸리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시스템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읽기 쉽게 되어 있었다. 물론 실리콘밸리에 대한 좋은 부분에 더 무게를 두고 기술 되어 있긴 했는 데, 그것은 그 쪽에서 일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보이고, 책의 집필 방향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게임 업계라서 일반적인 IT업계와는 좀 다르겠지만, 제이슨 슈라이어의 ‘피, 땀, 픽셀’을 보면 미국의 게임 개발사도 여기 못지 않게 치열하고 힘들게 묘사되어 있어 막연히 미국의 회사가 모두 꿈의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책에서 보고자 했던 것 중 하나는 평가 시스템이었다. 국내 기업을 여러 군데 다녀보며 다양한 평가 시스템을 경험해 보았지만 각 시스템마다 장점 보다는 단점이 많았고, 사원들의 불만은 항상 적지 않았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평가 시스템은 어떤지 궁금했다. 평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의 미션에 당신은 어떻게 기여했나요?’ 섹션에서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360도 인사 평가, 즉 나를 중심으로 주변 동료들로 부터 평가를 받는데 외부 직원 포함 7-8명으로 부터 평가를 받는다고 하고, 나의 대한 평가서를 쓰고 그 평가서는 모두 공개가 된다고 한다. 여기에 여러가지 세부 사항이 있는데 이는 책에서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크게 봐선 국내 기업의 평가 시스템과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이긴 한데, 360도 인사 평가는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동료 평가를 하긴 하지만 비중이 낮고, 상급자에 의한 직접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와 국내 기업간의 큰 시스템의 차이가 있기 보다는 시스템의 디테일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자신의 평가서를 작성할 때, 단순히 장점/단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한 계획이 어떤 것이 있는가를 쓰는 것은 의미는 비슷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자신의 단점을 쓰라고 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하고 싶은 부분을 적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이 더 잘 하고 싶은 부분을 거리낌 없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정보의 공개인 것 같다. 개인의 평가를 공개한다는 것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상상하기 어렵다. 일단 공개한다는 것은 투명하다는 얘기이다. 투명한 것은 과장되거나 거짓된 것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자기 평가서는 철저히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작성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기 위한 기반으로 공개 조건이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평가 결과 까지 공개가 되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만약 결과까지 공개가 된다면, 이보다 더 투명한 평가 시스템이 있을까 싶다. 물론 평가를 안 좋게 받으면 회사에서 오래 다니긴 힘들 것 같지만 말이다.
그 외에 역할 조직과 위계 조직을 예를 들어 설명한 글이 있는데, 이해하기 쉽고 재미 있었다. 위계 조직이 반드시 안 좋다는 관점이 아니고, 자신의 업무 스타일과 일에 대한 관점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 인데, 나 스스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잘 구성된 책으로 실리콘밸리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