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책을 읽고 난 후 그 느낌과 생각이나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글들을 어떤 카테고리로 구분지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 드는 생각은 뻔하지만 그 의미가 그대로 있는 독.후.감. 하지만 이 이름은 쓰고 싶지 않았다. 옛날 학창시절에 숙제로 강요받았던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책’ 이러면 미니멀리즘으로 보일려나 싶은 희망사항과 달리 단조로와 보이고, ‘책 읽고 난 후’ 이렇게 서술하듯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서재‘란 이름은 쓸데없이 거창해보이고, 영어로 ’Reading’ ‘Book’ ‘Book Report’도 리포트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다.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하고, 나 스스로도 감각있다고 자뻑하는 착각 속에 살지만 어딘가에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새롭고 신선한 일이다. 그래서 이름짓는 콘테스트에는 보는 족족 참가하는 편이다. 아무튼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내 독서록을 뭐라고 지어야 할까. 그래. 그냥 독서록은 어떨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짧은 두세줄의 글을 쓰고 이를 독서록이라고 부르던데 일단 독후감보단 백배 나아 보인다. 어째서 독후감이 이렇게 지독한 단어가 됐을까. 내 세대에 함께했던 거의 모든 이들이 좋아 하지 않는 단어들 중 독후감은 최소 10위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결국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한 단어는 ’독서 감상‘이 되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했던가 이게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온 문구로는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뻔해 보이는 이름을 지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의미가 너무 맞아 떨어졌기에 일단 순위에 올렸다. 읽을 독, 책 서, 느낄 감, 생각 상. 아재 인증같긴 하지만 의미가 찰떡같다. 순간 뒤집어서 ‘상감서독’이라고 할까 하다 무협지의 동사서독이 생각나서 얼른 접었다. ’독서 감상‘이라는 너무 뻔한 이름을 고민해서 지었다고 하면 주변에서 크게 웃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한번 재미있게 고민해봤으니 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