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시간
회사에서 가끔씩 여유로울 때가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어떻게 24/7 바쁘기만 하겠는가. 이러한 시간은 너무 귀중하기도 하다. 다음 일에 집중하기 전에 리프레시할 수 있는 짤막한 틈새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기도 하고, 유튜브를 모니터 구석으로 작게 보내어 슬쩍슬쩍 보기도 한다. 물론 웃고 싶어도 웃음을 꾹 참으면서 말이다. 신경쓰이는 상급자가 있다면, 그때 그때 윈도우의 창을 잘 바꾸는 것도 기술이다.
반면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업계나 기술 동향을 살펴보고, 새로 나온 게임과 기술을 알아보던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던가 말이다. 이러한 틈새 시간을 잘 보내면, 궁극적으로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도 유튜브 강의를 듣고, 샘플 코드를 만들어 보고, 블로그에 글도 정리하다보면 오롯이 기술 지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를 보는 주변 시선이 녹록지 않을 수 있다. ‘난 일하는 데 쟨 딴 짓 하네’, ‘일이 없으니까 저러는 구나’, ‘널널하구나’ 같이 주변에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구글의 80/20룰 (20프로의 시간을 개인 프로젝트에 할당해 주는 구글 사내 룰)을 시행한 이유도 이 틈새 시간의 중요성을 이미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까지 이 룰을 시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0%의 시간에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메인이 되는 경우가 여러 번 발생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구글은 세계의 인재를 끌어 모았고, 진취적이고 기술력이 뛰어난 인재가 어느 회사보다도 많았기 때문이 80/20 룰이 잘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회사의 뛰어난 인력이 만드는 틈새 시간의 가치는 하찮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N사에서는 게임 개발 관련자들이 게임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만렙 캐릭터를 하나씩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다. 물론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직원이 틈새 시간만 있으면 열심히 레벨 업에 몰두했고, 이 이후에 게임 만렙 캐릭터 하나씩은 모두가 가지고 있게 되었다. 사실 이 때를 계기로 나를 비롯한 여러 직원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졌고, 협업에서도 서로의 이해도가 높아 업무가 더 원활히 진행되곤 했다. 강제성을 띤 지시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게임을 하라는 것이라서 그렇게 거부감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틈새 시간의 활용법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디에선가 분명히 이를 연구하는 기관이 있을 것이고, 이미 이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하루 하루 버텨가는 중소 기업에게 틈새 시간의 적용은 적합하지 않다. 그들에게 틈새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내는 방법은 휴식일 것이다. 틈새 시간의 가치를 활용하려면 아마도 대기업이라고 부를 정도의 규모는 되어야 그 잠재성을 폭발할 정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